기사제목 [윤경로 신흥무관학교] “3·1 정신 되살릴 주체는 ‘민(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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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로 신흥무관학교] “3·1 정신 되살릴 주체는 ‘민(民)’이다”

원 코리아 리더
기사입력 2018.06.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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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AA) s.jpg▲ 윤경로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상임대표 / 전 한성대 총장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난 두 달여 간 언론을 통해 유독 '종전'이란 단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판문점선언에서 '연내 종전 선언'에 대한 협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 발발 68주년을 맞은 지금, 아직 끝나지 않은 정전상태의 긴장이 종전의 문서화로 마침내 해소될 수 있을까. 기대와 회의가 교차한다.

역사학자이자 전 한성대 총장을 역임한 윤경로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상임대표는 종전선언 논의와 관련해서 먼저 “6·25전쟁은 이념전쟁이었다”고 전제한 후 더이상 이념 속에만 갇혀있어서는 안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윤 대표가 이끌고 있는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10일 만주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 학교였다. 윤 대표는 지난 6월 8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에서 "독립운동 연구가 분단현실에 갇힌 탓에 신흥무관학교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으나 육사의 연혁을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군·광복군 양성 학교로 이어진다"며, "이념대립을 극복하고 한국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와 그 전통을 계승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력히 피력했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한창 열리고 있던 때에 윤 대표를 만났다. 그는 “아직 회담 결과를 낙관하긴 어렵지만 우려보단 기대가 크다”고 말하고 “모든 역사의 전환기에는 타이밍이 있는데, 지금 그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들어가고 있다.”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인터뷰·글 허경은


"한반도 정세의 변환, 타이밍이 좋다”

- 한반도 정세가 변하고 있다. 최근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해 전반적인 흐름 어떻게 분석하나?

"지난 70년 간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근래 남북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과정 중에서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우려보다는 기대에 더 힘을 싣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초창기이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도 아직 젊고 아마도 종신집권일 테니, 세 정상 간에는 정권교체로 인한 정책노선 변화의 불확실성이 크지 않아서 뭔가를 해보고자 할 때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좋고 이제는 시대가 변해 어느 강대국이 약소국을 제국시대처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기 때문에 어디를 억압하거나 침략한다는 걸,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은 해외 경험이 있고 젊기에 아버지 때와는 달리 통제 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금 모든 상황, 시기, 여건 등이 잘 맞물리고 있는 것 같다."

- 종전 선언을 넘어 평화 협정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종전선언 논의가 바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이 진행중(6월 12일 싱가포르회담 이후 후속 회담 논의 중)이나 종전선언은 북미 외에도 당사국인 우리가 포함돼야 하며 필요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도 정리가 필요하다. 다만 시기적으로 본다면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에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기가 문제이나 결국은 정전을 종전으로, 종전 이후엔 평화체제로 가는 단계는 반드시 필요하다. " 

“국가 통일 보다 앞서야 할 민족 통일" 

- 한반도 정세가 급변해 가면서 통일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통일은 분명히 될 것이다. 그리고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면 안된다. 통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국내에는 여전히 이념대립이 강하고 분단을 이용한 기득권 세력이 많이 잔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이루어졌던 독일통일 과정과 비교하곤 하는데, 독일도 통일 후 20여년간 차이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은 분단 중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 받고 TV도 보며 상호 정보교류를 많이 하지 않았나. 한국 분단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우리는 만약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이한다면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나하나 단계별로 준비해가고 그 과정에서 국민교육도 잘 해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통일을 맞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

- 단계적 통일로드맵,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분단된 과정을 살펴보면 ‘국토분단 -> 국가분단 -> 민족분단’의 순으로 고착화됐다. 미국과 소련의 남북 분할통치로 국토가 분단되고 이후 국가가 둘로 나뉘어지면서 민족도 완전히 갈라졌다. 통일 과정은 그 분단 과정의 마지막 부분부터 되돌려야 한다. 바로 민족을 하나로 통일 하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계속 심어주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등이 그런 과정의 하나라고 본다. 그렇게 민족이 마음으로 하나가 되면 그 다음엔 국토를 통합해야 한다. 가령 최근 논의되고 있듯이 철로를 연결해 왕래를 한다거나 남북 교류단이 서로 방문하는 등의 일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 간극이 좁혀졌을 때, 그래서 국민들 마음 속에 ‘더이상 분단 체제가 필요한가’란 물음이 제기될 때 비로소 국가 통일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민족통일 -> 국토통일 -> 국가통일’의 단계를 제시하고 싶다."

"3·1운동은 이념·종파 초월한 '혁명'이었다"

-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계시는데, 3·1운동을 ‘혁명’으로 정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3·1운동의 결과로 일제는 강압적인 무단통치를 유화적인 문화정치로 바꾸었다. 물론 더 교활한 식민통치 방법이었지만 변화를 이끌어낸 건 사실이다. 그리고 3·1운동 직후 한달여인 4월 11일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세계에 흩어져있던 독립운동단체 지도자들이 모여 백성이 주인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선포하여 '제국'을 '민국'으로 한 오늘의 '대한민국' 국호가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를 그저 운동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금, 이제는 그 가치를 '혁명'으로 되새기면서 그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 역사학자로서 본 3·1운동의 가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3·1운동이 가치있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일제 식민지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뜻만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자주독립을 넘어 인류평화를 실현하겠다는 큰 화두를 가지고 시작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되새겨봐야 할 것은, 우리 선조들이 백년 전 만세물결 속에서 분출했던 그 정신이 어느만큼 구혔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고 본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자주독립을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갈등 속에 살아가고 있다. 자유·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행복’의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모두 이루어졌는가? 아직 아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3·1운동 정신이 완전히 구현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3·1운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정신이 ‘연대정신’이다. 국가나 민족이 어떤 위험에 처했을 때 개인의 이념이나 주장, 가치관을 뛰어넘어 하나로 연대했다는 것은 대단한 가치이다. 당시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 종교인들이 민족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교리·교단·교파를 모두 초월해 하나된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정신이 지금은 살아있지 못하고 어쩌면 그보다 더 퇴보한 것 같기도 하다."

- 한국근현대사의 맥락에서 본 한국교회사의 역사성에 대한 강의도 하신 것으로 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종교인의 역할은?

"기독교인으로 말하겠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한국근대사와 함께 들어온 기독교는 자율적으로 수용돼 주체적으로 퍼진 특성을 가지는데 들어오자마자 개항-식민-광복-분단이라는 좌절과 수난으로 일그러진 한국 역사를 똑같이 경험하며 역사적 동시성을 갖게 됐다. 그 안에서 기독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개화운동-독립운동-해방투쟁-인권운동의 단초를 키우며 ‘하나되는 운동’에 앞장섰다. 
그런 역사성을 뒤로 하고, 작금의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10개가 다 한국에 있다고 할 정도로 비대해진 한국 기독교가 현실타협적, 정치지향적, 권력지향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스스로 부흥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분단사를 보라. 우리 기독교가 부흥했는가. 이념전쟁에 가담해 반공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을 해야 하는 게 기독교인들의 사명이다. 한반도가 숫한 외세의 침략과 수난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게 해준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모든 종교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 내년에는 정부기관, 기업,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주관하는 3·1운동 백주년 기념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릴 것이다. 이벤트성 행사로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유념해야 할까. 

"3·1운동이 일어날 당시 우리는 나라가 없었다. 나라가 없는 속에서 국가 주권, 인권을 맨 몸으로 외친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바로 ‘백성’, 나라 잃은 백성이었다. 내년에 정부, 민간단체, 종교단체 등 너나할것없이 3·1운동 백주년 기념행사를 벌일 텐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민(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연대해 벌이는 행사를 조직이 뒤에서 서포트하는 형식으로 가야지, 만약 정부가 지시하고, 어느 종교단체가 주도하며,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강제 동원되어 치러지게 된다면, 그건 3·1운동 정신이 빠진 행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시민들이 종교를 초월하고 연대하여 인류평화의 꿈을 펼쳤던 3·1운동의 정신이 우리 시대에 제대로 구현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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