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키워드#한반도] '미녀군단'이 역설적으로 보여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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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한반도] '미녀군단'이 역설적으로 보여준 '희망'

#북한응원단 #가면 #선글라스
기사입력 2018.02.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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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한반도] #북한응원단 #가면 #선글라스


000_2.jpg▲ 허경은 편집부장
“우리는 하나다! 조국 통일, 조국 통일!” 

경기장 한 켠에서 그들은 이처럼 '멋진 구호'를 힘차고 절도 있게 외쳤다. 북한여성응원단의 응원모습이었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의 낭랑한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함성이 되어 역사에 묻힐 수 밖에 없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또 한번 일깨운 분단현실의 안타까움이다.

개막 전부터 찬반논란으로 한동안 소란스러웠지만 방남한 북한 고위급대표단, 예술단은 어쨌든 올림픽 손님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남한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동서를 가로질러 강릉을 찾았던 그들은 짧은 기간 머물다가 돌아갔다.

그들에 비해 229명의 북한응원단은 남한사회에 훨씬 많이 노출됐다. '미녀군단'이라 불린 응원단은 대회가 끝나는 날까지 남아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응원전을 펼쳤다. 특별한 경기가 없는 날에는 경포대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고속도로를 달리다 들른 휴게소 화장실에서 몰카에도 시달리는 등 제법 많은 시간을 남한 시민들 틈에서 지내다 돌아갔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이들과 한국 시민들 간에 혹여 충돌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송월 예술단 단장,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은 한국 땅을 밟으며 미소를 먼저 지어보냈고, 응원단 여성들도 모두 밝은 미소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시민들은 “반갑습니다”, “너무 예뻐요”를 외치며 화답했다.  

이들의 행보와 표정 하나하나를 놓고 위선적이라거나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등의 해석이 분분했지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가족간의 화목을 다지는 설 명절과 겹친 기간이었다.

가면을 쓰고 색안경을 끼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 응원단의 가면 응원전에 대한 논란이 가열됐다. 지난 2월 10일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예선전을 응원 중이던 이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가면을 얼굴에 쓴 것인데, 그 얼굴이 마치 김일성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업무 상 많은 탈북자들을 인터뷰해 온 나로서는 그 가면이 김일성일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개막식에 등장한 인면조 퍼포먼스보다 더 기괴한 설정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의미도 모호하고 누구의 공감도 불러올 수 없는 그들만의 퍼포먼스는 다양한 해석과 논란을 일으킬 단초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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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응원단은 한술 더 떴다. 가면 논란 닷새 후인 15일, 용평 알파인 스키장에 그들은 전원 짙은 색의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났다. 과장된 해석을 덧붙이자면, 더이상 유토피아 같은 한국의 발전상과 자유로움에 놀란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을까. 가면에 이어 색안경까지 끼고 나타난 모습이, 마치 북한 체제의 실상을 상징하는 듯 했다. 

그들은 분명 한국에 와서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를 느꼈겠지만, 그것을 말이나 표정으로 절대 드러낼 수는 없다. 포커페이스의 유지가 그들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북에 돌아간 후 이제 그들은 스스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한국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보고 느낀대로가 아닌, 이미 정해져있는 모범답안에 맞춰...

김정은 정권의 마지막 패는?

이들 덕분에 나는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설 명절을 맞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북한 사람들이 본 지금의 한국은 어떨까?’란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서 KTX 창밖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는 플랫폼 전광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멈췄다 출발하는 기차, 일상으로 복귀하는 도로 위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량들, 해질 녘 하나 둘씩 켜지는 가로등, 때론 너무 많아 공해로 느껴지기도 했던 교회 지붕 위 십자가까지… 평소 익숙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풍경들이 이토록 각별할 수 없었다.    

탈북자들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로등 불빛 하나를 보고, 시민들의 옷차림을 보고, 때론 가로수에 매달린 정부 비판의 플랜카드 하나를 보고도 완연히 다른 세상이라는 걸 가늠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하물며 3백여명에 달하는 응원단을 2일도 아닌 20여일간 한국 땅에 머물게 했다. 아무리 사상교육을 충분히 시켜서 보냈다 하더라도 위험성이 큰 결정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평창올림픽이라는 도박장에 미녀응원단이란 패를 과감히 던져 본 것인가. 그렇다면 그가 숨기고 있는 마지막 카드는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그건 과연 평화라는 카드일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응원이 변화의 동력이기를... 

진정한 걱정은 이제부터다.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던 북한은 평창올림픽 폐막 당일인 25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이 남조선 괴뢰들과 합동훈련 재개하면 우리 천만 군민이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제 곧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될 것이기에 그들의 트집 잡기는 예견된 수순일테고, 때마침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생일)도 다가와 체제과시용 도발을 하기에도 딱 좋은(?) 시기를 맞았다. 

나는 오히려 이럴 때 북한의 리스크가 제대로 터지길 기대해본다.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난이나 외교적 고립 못지않게 심각한 북한의 리스크는 일반 주민들의 남북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이불 속에 숨어 TV로 보거나 옆집 사람에게 들은 상상 속 한국이 아니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한 '진짜 한국'을 경험한 한 명의 계몽된 주민이 북한의 리스크이고 우리에겐 희망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맞아 미소로 화답한 한국 시민들은 큰 일을 해냈다고 본다. 우리가 준비한 축제의 초반에 북한이 여러모로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런 논란 속에서도 시민들이 보여준 따뜻한 인상은 그들에게서 가면과 색안경을 자연스럽게 벗겨내는 힘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그들이 응원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비록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우리가 보낸 응원은 그들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하나의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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