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한서희 방송인] "그리운 금강산을 부를 때면 언제나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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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희 방송인] "그리운 금강산을 부를 때면 언제나 목이 메인다"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기사입력 2017.10.2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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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7_11_58_19_12529566907_20170816145913514.jpg▲ 한서희 방송인 / 안보강사
  
북한 이슈들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에는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패널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의 행보와 그 배경을 분석하는 방송이라면 어김없이 자주 등장하는 패널이 있는데, 바로 리설주와 같은 인민보안성협주단에 소속돼 활동했고 탈북 후 방송인으로도 활약 중인 한서희 씨다.

채널A ‘이제만나러갑니다’, TV조선 '모란봉클럽' 등에 출연했고 안보 강사로도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한 씨는 방송이나 강사 활동 외에 학업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비밀 공연단에도 소속돼 김정일 앞에서 노래했었다는 그는 “나는 강요된 삶을 살았다”고 회고한다. 6살 딸의 엄마인 그녀가 지금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은 딱 한가지다. “내 아이만큼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 씨는 북한에서 고위 행정 간부였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몰래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령을 의심하거나 혼잣말이라도 비난을 한 적은 없었다며 한 씨가 반문했다. "이것이 바로 세뇌의 결과 아닐까요."

인터뷰·글 허경은


“북한에서 부유했고 한국에서 가난했었지만...”

“한국에 정착해 하나원을 나온 후 처음 배정받은 아파트를 보고 눈물이 났어요. 너무 열악해서···.”

목숨을 건 탈북에 성공해 자유를 찾고 주택까지 무상으로 지원받았다면 감격해 할 거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평양에서 부유한 삶을 살았던 탈북자들에게 한국사회가 주는 인상은 조금 다르다. 한 씨의 경우가 이를 말해준다.

“좁고 어두운 화장실을 갖춘 7평 남짓에 불과한 작은 아파트를 임시주택으로 배정받자마자 한국에 대한 환상이 깨졌습니다. 저도 여느 한류 팬들처럼 한국드라마에서 본 정원이 있고 2층으로 꾸며진 주택을 상상했었죠. 한국인들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으니까요. 처음에는 현실에 낙담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현실을 빨리 깨닫고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자리 전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 씨가 탈북을 결심한 배경에는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적극적인 본인의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씨의 오빠가 교제하던 여자와 먼저 탈북을 한 게 계기가 되어 한 씨 가족들이 뒤따라 도망치듯 북한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족 중 누군가 탈북한 사실이 발각되면 연좌제로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위계층으로 올라갈수록 처벌의 수위는 더 강해진다.

“처음에는 오빠를 원망했고, 탈북 과정 중 몽골에서 보낸 6개월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들려주는 한국 이야기에 환상을 키워가며 버틸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의 초기 정착과정이 제 기대만큼 평탄치도 않았죠.”    

방송 통해 북한을 알리고 자존감 되찾아

한 씨는 북한 체제의 모순과 문제점도 탈북 후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받아들이게 됐다고 고백했다. 북한을 심하게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부감도 들고 마음 한 편에는 “그래도 조국인데…”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그 체제에서 무지하게 살았던 스스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 같다고 여겼나봐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북한에 대한 말을 잘 안 꺼내곤 했는데 처절하게 핍박 받고 산 탈북자들의 고통과 이야기들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자유란 게 뭔지도 모른 채 오로지 김 부자들을 위한 노예처럼 살았던 것이죠. 어느 순간 생각했습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숨어살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방송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북한을 알리고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 그런 마음이었죠.”

한 씨는 ‘이제만나러갑니다’, ‘모란봉클럽’ 등 탈북자들이 출연해 북한을 알리는 예능프로그램을 비롯해 북한에서 어떤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뉴스 채널에도 패널로 출연해 북한에서 보고 겪은 것을 사실대로 전하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034.jpg▲ 한서희씨가 방송 출연 중인 모습 (출쳐=채널A'이제만나러갑니다' (상단)/ TV조선'모란봉클럽' 방송화면 캡쳐)
 
“탈북자들의 방송 출연이 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첫 째는 한국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북한사회를 많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아는 것이라면 뉴스를 통해 본 북핵 문제, 그리고 나름 화려하고 즐거워 보이는 평양의 모습들이었죠. 물론 여전히 탈북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는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점은 탈북자들의 자존감이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북한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자기를 당당하게 드러내 보이게 된 것이죠.”  

“지금은 북한보다 한국 사회가 더 걱정”

한 씨가 한국에 들어온 지 4년여가 흐른 2011년 겨울 김정일이 사망했다. 한 씨는 이 날을 떠올리며 “이제는 통일이 되겠구나. 북한 주민들도 이제는 우리처럼 살 수 있겠구나”싶어 기대감을 키웠다고 한다.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그 사회에도 큰 변화가 있겠구나 싶었죠. 사실 대접받고 살았어도 김정일 앞에서 공연하며 사는 삶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긴 했거든요. 김정일의 행선지는 언제나 비밀이었기에 제가 소속된 공연단도 모두 비밀리에 연습했고, 제 부모님조차도 잘 모르고 계셨죠. 그 때는 그게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꼭두각시였던 것이고, 그건 저 뿐만이 아니라 북한 주민 모두가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망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주었죠.”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북한은 세습된 독재자의 지도에 따라 더 강력한 핵무기로 무장하고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다를 게 없다. 정권이 교체되긴 했지만 이념갈등은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제는 북한보다 한국 사회가 더 걱정됩니다. 북한은 계속 강력히 도발을 이어가는데, 한국은 내부적으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가끔 두려운 것은 혹여 다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베트남처럼 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초반에는 한국이 파병으로 도와주었던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월남이 우위에 있었지만 결국 사회·공산주의 체제의 월맹이 이겼으니까요.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까봐 두렵습니다.”
 
“한반도 변화 위해 흩어진 마음 하나로 모아야"

한 씨를 처음 만난 건 이번 인터뷰가 있기 1년여 전인 지난해 12월이었다.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고 세계인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래를 만들고자 한국을 방문한 지미 잼(Jimmy Jam)과 테리 루이스(Terry Lewis), 그리고 팝 가수인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등 세계적 뮤지션들이 DMZ와 제3땅굴을 돌아보던 때 한 씨와 동행했다. 분단현장을 찾아 창작의 영감을 얻고자 방한했던 이방인들 앞에서 한 씨는 우리의 노래 ‘아리랑’을 불렀다. 

028.jpg▲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한서희씨
 
029.jpg▲ 지난 해 12월 제3땅굴을 방문한 한서희씨가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노래를 듣고 있는 팝가수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 오른쪽부터), 작곡가 지미 잼(Jimmy Jam), 작사가 테리 루이스(Terry Lewis), 서인택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상임대표, 박강원 원케이미디어그룹 대표.
 
'아리랑'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그리운 님'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고, 나를 다스려 밝은 곳으로 인도한다는 '자아성찰'의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광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도 있어 올림픽 등 국제행사에서 많이 불리기도 했다. 한 씨의 노래에서 한(恨)의 정서나 사랑, 평화와 같은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을까. 잼&루이스는 ‘코리안 드림’이란 노래를 만들어 세계에 선보였다. 선율에서 왠지 모를 아리랑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 씨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그리운 금강산’이라고도 덧붙였다.  

“한국인들이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보다 저처럼 북에서 온 사람들이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은 다릅니다. 진심이 담겨 있죠. 많은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가끔은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듣는 이들도 제가 부르는 노래는 익숙히 들어왔던 그리운 금강산보다 더 애절하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가사 자체가 제 삶이기 때문일까요?”

평생을 노래해왔던 한 씨는 앞으로 전문적인 공부를 더 해서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앞서 그의 면학열정이 남다르다고 본 이유이다. 북에서 겪은 경험을 솔직히 전하고, 전문 지식으로 이해시키며, 진정성을 담은 노래로 감동을 전한다면 흩어진 마음들이 모아지고 하나의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3만여 탈북민들이 그리운 금강산을 다시 가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씨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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