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은하 방송인]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가가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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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하 방송인]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가가 더 중요"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기사입력 2016.12.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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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jpg▲ 신은하 탈북 방송인 / 간호사
 
탈북민들이 출연하여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남북 화합의 장을 모색하기 위한 채널A의 예능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 이만갑)가 12월 4일로 방영5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특집 녹화방송(11월 18일)을 사흘 앞둔 11월 중순, '이만갑'의 간판 스타 탈북방송인 신은하씨를 만나보았다.

신씨와 방송에 함께 출연하는 언니 신은희에게는 ‘탈북미녀 자매’란 타이틀이 붙여져 있다. 탈북 여성들이 억척스러울 것이란 선입견이 있지만 신씨 자매는 시종일관 해맑은 미소와 수줍은 말투로 방송에서 매력을 뽐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자매의 탈북 스토리는, 지금의 외양과는 사뭇 달리 고난으로 이어지는 '연속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두만강 인근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신씨네 가족은 고난의 행군 시기가 지나며 많은 아사자들이 발생하던 1998년 1차 탈북을 시도했다. 신씨는 당시 12살의 어린 소녀였다. 

“중국을 오가던 어머니가 한 선교사로부터 녹음기 테이프를 받아서 북한으로 가지고 들어오다 걸린 게 계기가 됐어요. 그 테이프 안에 찬송가와 설교내용이 들어있었는데, 북한에서는 종교를 전파하다 걸리면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기 때문에 부모님, 언니와 함께 네 식구가 하루아침에 짐을 싸 들고 두만강을 건너게 된 거였죠. 사실 저는 어린 나이였고 북한의 실상을 잘 몰랐던 때라서 부모의 손에 붙들려 나오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한 조선족 집에 얹혀 머슴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한겨울에 쫓겨 나와 깊은 산 속에 숨어 살았는데, 쥐가 들끓는 빈 닭장에서 자고 쥐굴을 찾아내 쥐들이 저장해 놓은 콩, 옥수수 등을 꺼내 씻어 먹는 등 짐승의 생존법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탈북자들이 가장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북송인데, 신 자매도 그걸 한 차례 겪었다. 누군가의 신고로 부모가 없는 틈에 언니와 함께 붙잡힌 신씨는 바로 북한으로 송환되어 꽃제비 수용소로 보내졌었다. 어린 자매에게 현실은 그토록 가혹했지만 구원의 길이 완전히 닫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언니와의 손을 놓지 않고 다시 2차 탈북(2002년)을 시도했고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부모와 2003년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저희가 다시 탈북에 성공한 후 중국에서 다시 만난 어머니는 실어증에 걸려 있는 상태였고, 그 사이 아버지도 붙잡혀 북송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아버지도 결국 다시 탈북에 성공, 극적으로 가족이 모두 만나게 된 거죠.”

그의 가족들이 한국에 정착한 지도 벌써 13년이 흘렀다. 신씨는 이제 자신이 북한출신이라는 걸 가끔 잊을 때도 있다고 했다. 

“첫 1~2년 정도까지는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이제는 너무 잘 적응을 해서 가끔씩 어릴 때 일들을 잊고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인권 운동가로 활동중인 탈북자 지성호(북에서 먹을걸 찾아 돌아다니다 영양실조로 기찻길 위에 쓰러지며 한쪽 팔, 다리를 잃었다. 병원에 실려갔으나 마취약이 없어 덜 절단된 생살과 뼈를 톱으로 잘라내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내다 한국에 와 의수, 의족을 얻어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씨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씨는 지씨와 같은 사연들이 아직도 북한의 현실이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각오도 덧붙여 말을 이어갔다. 

"오랜동안 방송 활동을 해 왔지만 아무 생각없이 카메라 앞에 앉아있으면 안되겠다, 그저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방송인이자 통일강연자로, 또 병원에서는 간호사로 살아가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느 위치에서 어떤 일들을 해 나갈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위치에서든 항상 올바른 의식을 잃지 않고 제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기여해야 하는가를 명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인터뷰·정리 허경은



◆ 방송을 통해 북한의 어두운 실상과 행복했던 추억을 공유 

신씨는 채널A의 두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 ‘잘 살아보세’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이만갑이 탈북민들을 스튜디오의 주요 패널로 등장시켜 북한의 제도, 생활상 등을 소개하여 한국 시청자들이 북한사회를 이해하도록 돕는 방식이라면, 잘살아보세는 통일이 됐다고 가정하고 남북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경험해보기 위한 가상체험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저는 북한에서 어릴때 친구들과 어울렸던 기억들뿐이라 사실 행복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부모님이 중국을 오가며 어렵지 않게 우리를 보살펴 주셨고, 거리에 널려있는 아사자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지못하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친구들도 저처럼 그럭저럭 잘 먹고 사는 줄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것도 필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는 즐거움도 있었다는 걸 모두 알리고 싶습니다. 너무 처절한 모습만 언론에 비춰지니 한국인들에게는 탈북자들에 대해 ‘못 사는 나라에서 온 거지들’이란 인식이 짙은 것 같고 그것 때문에 어울리기가 더 힘든 측면이 있거든요.”

6 (2).jpg▲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 모습 <제공=신은하>
 
◆ 봉사의 마음으로 환자 돌보는 '백의천사'

신씨의 주요 활동 무대가 방송인 만큼 ‘방송인’이 그의 메인 타이틀이지만, 정식으로 고용된 직업은 ‘간호사’이다. 현재 부천의 한 개인병원의 피부과 간호사로 근무중인 그는 주중에 방송 녹화가 많은 관계로 주로 주말에 병원에 나가 의사의 진료를 돕고 환자도 돌보고 있다.

“북한에는 한국의 피부과 같은 곳이 없습니다. 한국의 병원 문화를 체험하면서 느낀 것은 ‘아파도 행복한 곳이 한국이구나’였습니다. 북에서는 환자가 직접 붕대, 지사제, 해열제 등 도구와 약들까지 다 사들고 가서 의사한테 치료해 달라고 해야 되는데, 여기에는 X-ray, CT 등 최첨단 기계들도 많고 환자를 ‘고객님’이라 부를 정도로 서비스 문화가, 제 눈에는 가히 충격적일 정도였거든요.”

신씨는 중앙대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처음부터 간호학과에 갈 뜻이 있었던 건 아닌데 언니의 조언이 진로선택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서로 의지하며 목숨을 걸고 함께 이 땅까지 오게 된 언니가 ‘우리가 받은 만큼 앞으로는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일깨웠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바로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그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 청년에겐 통일 꿈 키워주는 ‘통일천사’

현재 800여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통일천사)의 홍보대사도 맡고 있는 신씨는 ‘신냉전기, 대한민국의 선택’을 주제로 지난 10월에 부산에서 열린 통일포럼에 강연자로 참석했다.

청소년들의 경우 통일문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북한 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단 한 명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거나 의식에 변화가 온다면 누가하든 강연을 통한 통일교육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신씨는 이를 절감하고 있는 듯 겸손한 어조로 “탈북자들이 많이 늘고 있고 북한문제에 관련한 전문가들도 많은데 자신에게 통일관련 강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저는 한국에 왔을 때 십대였기에 큰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부모님께서는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철저한 배급사회에서 살다가 갑자기 자본주의체제로 들어오니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했었죠. 그런데 억양이 다르다 보니 조선족이나 탈북자는 쓰지 않는다며 거절당하는 경우도 허다했고, 북에서 고문을 받아 허리를 잘 못쓰시는 아버지한테 ‘못먹고 살다 와 저렇게 힘을 못쓴다’며 타박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좀 더 따뜻하게 마음을 열고 받아주셨으면 좋 겠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여성 탈북자 신은하는 방송에서는 시청자들과, 병원에서는 환자 들과, 강연장에서는 청년·시민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생활 속에서 작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풀뿌리 통일운동을 실천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통일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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