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북한돋보기] 북녘 바다에서는 생명의 씨도 말라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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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돋보기] 북녘 바다에서는 생명의 씨도 말라 가는가

칼럼
기사입력 2016.10.0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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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부자의 생일 다음으로 중요한 '조선로동당창건일(10월 10일)’이 다가오면 북한 전역은 매우 분주하게 돌아간다. 내부 결속력 강화와 체제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열병식, 주요 건물 건립, 미사일 발사 등의 행사들이 당 창건일을 전후로 잇달아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진 모양이다. 대북 제재로 인한 자금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행사 준비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어업권 판매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연히 판매대상은 중국 어부들이다.   

어업권 매매로 북한 어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 

물론 어업권 판매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단지 어업권을 구매한 어부들의 국적만 달라졌을 뿐 이전에도 북한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어업권을 허가해주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전하는 어업권 매매 행태는 북한어민들의 힘든 생존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의 해안에는 해군, 해안포, 해안경비대 등이 줄지어 배치돼 있다. 부대가 있는 구역으로부터 일정 거리까지는 모두 어로 금지 구역이다. 만(灣)처럼 움푹 들어간 지역에는 공동수산사업소, 수산협동 등이 있어 개인 배를 가지고 어로작업을 할 수 있지만, 그것도 해당 수산사업소에 소속을 등록해 놓고 돈과 수산물의 일부를 바쳐야 가능하다. 사실상 바닷가에서의 자유로운 어로작업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는 셈이다.

함경북도 청진 동해바다에서 어로작업을 하며 해산물 장사를 했던 박정화(가명)씨는 힘겨웠던 지난 날의 삶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처음부터 어부였던 건 아니다. 13년 간 청진시의 한 병원에서 수술장(외과) 간호사로 근무를 했지만 많은 아사자가 발생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90년대 말 생계 유지를 위해 병원을 나와 부모님이 계시던 바닷가로 내려왔다.

“군대에 돈 내고, 초소에 돈 내고, 기름 값 내고, 배 감시해주는 사람까지 챙겨주려면 남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 방법이 딱히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죠 "  

상강 절기에 동해에 수장된 2만 명의 목숨 

10월 23일은 상강(霜降)이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걸 뜻하는 상강은 결실한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며 기쁨을 나누는 절기이다. 그러나 박 씨는 매년 이 무렵에 잃어버린 가족들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고 했다.

“2005년 10월 21일, 상강을 이틀 앞둔 날 가족들이 배를 몰고 나갔습니다. 바다가 새카맣게 보일 정도로 출항하는 고기잡이 배가 바다를 뒤엎었죠. 호수처럼 파도도 매우 잔잔했고 TV에서도 맑은 날씨가 지속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출항한지 1시간만에 밤부터 해일이 온다는 라디오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배가 나가면 밤새 작업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들어옵니다. 저를 비롯한 온 마을 사람들이 바닷가로 뛰쳐나왔죠.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사람들, 걷기도 힘들만큼 강풍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는 사람들. 그렇게 해일은 5일간 지속됐고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바닷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닷새 만에 배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상강이면 먼 바다는 온도가 영하입니다. 동사한 채 떠밀려오는 시체들. 가까스로 러시아 배에 구조돼 실려온 아이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까지. 당시 함북 나진에서 함남 단천까지 동해안을 따라 있는 어부들 약 4만 명이 동시에 나갔다고 하는데 절반 정도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때 전 아들과 사위, 제부를 한 날에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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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선전에 방해되면 어떤 비극도 '없었던 일'

박 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분주소(파출소)로 달려가 한 시간 전에 출항한 배들의 귀항을 독촉하는 방송을 헬기를 띄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이유는 과거 서해안에서 바다에 빠진 1명의 주민을 헬기로 구조해오며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TV 중계 방송을 시청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 때였는데, 서해에서 미역, 조개 등 천해(淺海:얕은 바다 밑)양식을 하던 한 처녀가 조개를 주우러 나갔다가 밀물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된 적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기에 물이 금새 얼어붙었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둥둥 떠다니는 얼음 위에 올라 있었죠. 그때 곧바로 헬기를 보내 여자를 구출해오며 그 정경을 대대적으로 중계했습니다. 인민을 위한 국가라고 선전을 하면서…”

그러나 4만명의 목숨이 달린 바다에 헬기를 보내달라고 하니 ‘개인 돈 벌러 갔지, 나랏일 하러 간거냐’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박 씨의 증언이었다. 수만 명이 실종된 이 비극적 대형 해난사고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고 당시에는 대부분의 주민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박씨는 "체제 선전에 방해가 되면 어떤 큰 사건도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한 게 그 쪽 세상"이라고 했다.

박 씨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의 기상 정보를 확인해보면, 2005년 10월 21일부터 4~5일에 걸쳐 동해선풍(東海旋風)이 강하게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해선풍은 예측이 어렵고 태풍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바람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어 ‘폭탄바람’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2005년 10월 23일경에는 동해안에 최대파고 9.6m의 너울이 발생했다고 하니, 조그만 목선을 타고 고기잡이에 나섰던 북한 어부들의 피해는 실로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길이 보전되길

중국에 어업권을 팔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북한 어부들은 현재 수산물 대량 포획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박 씨도 직접 만든 배에 8~12마력 정도의 오토바이, 농기계용 기관을 달아 고기잡이를 했다고 했다. 수산사업소 배처럼 100~200마력 정도는 돼야 먼 바다에 나가 문어잡이 등이 가능한데 점차 원유도 구하기 힘드니 작은 목선 하나씩 가진 개인들이 목숨을 담보로 수산물을 잡아오는 게 전부였다.

중국의 수많은 대형 선박들이 서해, 동해에서 포획한 수산물의 일부를 포함해서 현금까지도 북한 당국에 바친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싹쓸이 포획으로 바다 속 어패류의 씨가 마를 정도가 되어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북한의 앞 바다가 점차 사람의 생명도, 동식물의 생존도 보호 받지 못할 정도의 상태로 겨우 연명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북한이 지난 6월 백두산의 일부 개발권도 중국(홍콩)에 팔아 넘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로 정치적 상징으로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주민의 인권회복은 물론 우리의 영토와 영해가 온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통일한반도가 하루빨리 이 땅에 도래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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