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북한돋보기] 외교관의 ‘탈조국’으로 드러나는 북한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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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돋보기] 외교관의 ‘탈조국’으로 드러나는 북한의 ‘민낯’

칼럼
기사입력 2016.09.0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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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은.jpg▲ 허경은 편집부장
사전적 풀이로는 ‘외국에 주재하며 자기나라 대표 자격으로 외교업무를 수행하는 관직’이 바로 외교관이다. 그래서 외교관은 곧 ‘나라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외교관의 망명이 알려질 경우 항상 큰 국제적 이슈가 되는 이유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자기 조국을 버렸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엄격한 통제와 삼엄한 감시 속에서 해외 생활을 하는 북한 외교관의 망명은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삶을 담보해야 하는 결단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최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가족을 동반하고 지난 8월 17일 한국으로 망명했다. 태 공사는 지금까지 귀순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으로 주영 대사 관에서 서열 2위이고 북한 정권의 이미지를 선전하는데 선봉 역할을 해 온 인물이란 점에서, 그의 탈북은 북한 내부에 대단히 큰 충격을 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외교관의 망명은 우리 정부당국의 공식 발표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고 신변보호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감춰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중순 만나 본 탈북 외교관 김영건씨(가명, 2012년 입국)도 언론 노출을 거부한 채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가족과 함께 탈북하지 못했다. 그가 남한에 정착한 후에도 사회적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이유는, 외교관이었거나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고위급 인사일수록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처벌이 더욱 가혹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신 성분이 좋아 당의 배려로 잘 살아 왔지만...

평양 토박이에 김일성종합대학교를 나오고 해외유학까지 다녀왔다면, 북한 체제에서 사실상 상위 1%에 해당하는 집안 출신임에 틀림이 없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까지 구사할 수 있어 대학 졸업 후 바로 외교관이 된 영건 씨는 ‘당의 배려를 받았다’는 말로 북한에서의 생활을 요약, 표현했다.

물론 능력만 있다고 모두 외교관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토대’에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선대(先代)의 누군가가 영웅적 역할을 한 집안이어야 했다. 따라서 그가 외교관이 된 것은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집안의 내력이 결정적으로 뒷받침해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관이 된 순간부터 삶은 지옥이었다”

‘노동당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북한 주민들이 생활의 신조로 암기해야 하는 당의 강령이다.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사실상 법보다 강력한 규제의 기준이자 사상적 수단이다.

이 원칙의 3조 4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옹호하며 현대 수정주의와 온갖 원쑤들의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수령님을 견결히 보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영건 씨는 외교관이 된 후 해외에 도착하자마자 ‘조국’과 ‘수령동지’에 대한 비판의 정보들을 무수히 접하며 ‘원쑤들의 공격이 이런 것이구나’를 체감했다고 했다.       

“절대로 사상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참 쉽게도 무너지더군요. 저처럼 사상이 완전히 새빨간 자도 결국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한 후에는 조국에 대한 배신감이 날로 커졌습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 조국의 심장에 칼을 꽂고 싶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인해 외무성 A국 감청팀에 소속됐다고 했다. 24시간 세계 각국의 방송을 감청하고 한국어로 번역한 후 정세보고용 브리핑자료를 만들어 북한 당국에 보내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당연히 외교관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정보를 여과 없이 접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 때부터 제 삶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배신감과 분노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북한 중앙TV의 모든 장면들이 ‘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를 버티게 한 힘은 가족”

모든 외교관들의 가족 중 일부는 반드시 북에 남겨지게 된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탈북을 감행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영건씨는 말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식도 그저 참는 것뿐이었다.

“북한에서 외교관 집안이라 하면 최고의 명예입니다. 나 하나만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가족은 평양에서 120평 아파트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았고 자식들 또한 그만큼의 혜택을 누렸죠. 온 가족을 동반하고 탈북하기란 너무 힘들고 위험했기에 나중에 때를 보더라도, 우선은 가족부터 지켜야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20여년동안의 외교관생활을 견디어 냈다. 나라의 얼굴로서가 아니라 허위의 가면을 쓴 외교관으로 지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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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북한의 외교관들도 그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TV스크린에 종종 비치는 북한 외교관들의 눈빛이 새삼 달라 보인다. 지금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해도 언젠가는 그들 모두가 가면을 벗어 던지고 속 시원하게 숨을 내 쉴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 외교관은 물론 다른 고위 공직자들의 망영, 탈북 소식이 자주 들려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들의 ‘탈조국’이야말로 분단의 빗장을 열어가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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