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北·日 북송사업 만60년, ‘아직 해방되지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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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日 북송사업 만60년, ‘아직 해방되지 않은 사람들’

가와사키 에이코 일본AKU 공동대표, 워싱턴 세미나에서 북송된 재일동포 실태 고발
기사입력 2020.03.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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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_s.jpg▲ 가와사키 에이코 통일천사 일본본부 공동대표가 지난 3월 4일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북송사업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북한-일본 간 북송사업 시작된 지 만 60년…대부분 생사여부 알 길 없어
1959년 12월부터 25년간 9만명 이상,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북송선 탑승

온라인.jpg▲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진 '재일조선인 북송사업(在日朝鮮人 北送事業)'은 북한과 일본 간의 합의에 의해 재일동포들을 북한으로 이주시킨 사업이다. 25년에 걸쳐 총 186회 북송선이 운영됐고, 일본인을 포함해 총 9만 3,340명의 재일동포가 북송됐다. 현재는 북송된 9만여 명 중 약 170여 명이 북한을 탈출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출처=마이니치신문).jpg▲ 북한으로의 출항을 앞두고 일본 니카타 항에 정박한 배에 재일동포들이 승선해 있다.  (출처=마이니치신문)
 
17세에 북송돼 43년만에 탈북 성공한 가와사키 에이코, 
“우리는 북한·일본 정부 모두에 속았다…국제소송 진행중”
"막강한 국가 권력이라도 한 사람의 자유 짓밟아선 안돼“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문제 풀 절호의 기회”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북한과 일본 간 맺은 협정에 따라 일정 기간동안 추진되었던 조총련계 한국인(재일동포) 송환 프로젝트이다. 1959년 12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을 통해 1984년까지 25년에 걸쳐 약 9만 3천여 명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했다.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지난 12월을 기점으로 만 60년이 지났다.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통일천사) 일본본부를 이끌고 있는 가와사키 에이코 공동대표는 자신이 17세이던 때에 이 북송선에 올라 북한으로 이주한 후 40년이 지나서야 북한을 탈출해 일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북송사업 만 60년을 돌아보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북한인권과 한반도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하여 지난 3월 4일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대학교에서는 가와사키 대표를 초청한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글로벌피스재단, 느헤미아글로벌이니셔티브, 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가 공동 후원하고 ‘북한의 자유와 인권 회복의 길’을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 가와사키 대표는 북송사업의 실태와 북한에서의 삶을 생생히 증언하고 참석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질문 세례를 받았다.

02_s.jpg▲ 3월 4일 워싱턴대학교에서 ‘북한의 자유와 인권 회복의 길’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가와사키 대표는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간 이주민들이 고문, 가정폭력, 성희롱 등을 당하는 것을 수차례 목격하였으며 자신 또한 고통 속에서 살다가 43년만인 지난 2003년에 탈북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북에 남겨진 가족들이 있어 지금까지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그는 “김일성이 사망한 후부터 시작된 고난의행군 시절에는 거리에 아사한 시체들이 널려있고 도난·강도·살인 사건 등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탈북 후 일본으로 돌아가 북한 사회를 증언하는 책을 출간하고 각종 언론 및 세미나 등에 참석해 북한 인권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인권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09s.jpg▲ 가와사키 에이코 대표가 직접 집필한 책을 들어보이며 북한에서 겪었던 인권 침해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15년 가와사키 대표는 3만여 일본변호사들이 소속돼 있는 일본변호사연합회 인권과에 정식으로 북송사업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북송사업에 참여한 북한정부, 일본정부, 조총련, 북한 적십자, 일본 적십자, 적십자국제위원회 등 6개 기관을 상대로 북송사업의 불공정을 국제사회에 인정·공포하고 북송된 동포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라는 내용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북한뿐 아니라 일본에게도 공동의 책임을 묻는 이유에 대해 그는 "북한은 조총련을 통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선동하는 거짓 정보를 주입했고, 일본 정부는 그렇게 떠난 동포들이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숨겼다. 북송 사업은 북한과 일본의 공동 합의에 의한 것으로 결국 일반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고 자유를 침해당한 사건"이라고 정리했다. 

가와사키 대표의 부친은 경남 창원, 모친은 전남 목포가 고향이다. 가족력을 보아도 북한에 적을 둔 적이 없다. 전쟁 이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었으나 그 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은 조총련이 선제적이고 대대적으로 설립한 학교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북한 체제에 기반한 교육을 받게 됐다. 

(출처=요미우리신문).jpg▲ 일본 니카타 항에 북송선이 정박해 있다. (출처=요미우리신문)
 
"당시 한국에서는 이승만 타도 운동이 일고 있었기에 북한은 이를 이용해 한국 정부가 곧 무너질 것처럼 적화공작을 펼쳤고 북한의 사회주의의 장점에 대해 더욱 집중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바다건너 상황을 잘 알지 못했던 재일동포들은 그런 선동에 노출되었습니다." 가와사키 대표는 일본에서의 교육을 통해 6.25가 북한의 남침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조총련의 교육이 병행되어 혼란을 겪었고, 어떤 정보에 흔들리기 보다는 직접 북한에 가서 현실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북송선에 오르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북한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북한을 비판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경우 처형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되면서 감시와 통제 아래에서 삶을 이어오게 됐다고 토로했다.

가와사키 대표가 정식 소송절차를 진행한 것은 지난 2018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서다. "어떤 막강한 국가 권력이라도 한 사람의 자유를 짓밟을 순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나 그 제소는 기각되고 말았다. 이후 같은 해 8월 탈북자 5명과 함께 도쿄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다시 제기한 상태이고 곧 재판이 실시될 예정이다.

그는 단순히 감정에 대한 호소가 아닌 법적 절차에 의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대북제재 장기화, 코로나 사태, 김정은 건강이상설 등이 복합적으로 가해진 지금이야말로 북한의 변화를 통해 통일을 앞당길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08.jpg▲ 세미나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인 후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워싱턴대 학생들을 포함한 세미나 참석자들은 질의응답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룹토론을 이어가며 이러한 문제 공론화하고 통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소셜미디어 확산 운동안을 모으기도 했다. 

세미나를 공동 주최하고 진행한 강순옥 글로벌피스재단 부회장은 “인권 확립은 인류 공동의 문제이다. 가와사키 대표의 증언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큰 희망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용기와 증언은 세계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한반도는 지금 이러한 아픔을 극복하고 민족 화해를 통해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통일한국은 세계에 평화 구축의 촉매 역할을 하는 모범 국가가 될 것이다. 많은 지지와 동참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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