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최용권 선진통일건국연합] “의식이 하나로 통할 때 진정한 통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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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권 선진통일건국연합] “의식이 하나로 통할 때 진정한 통일 꿈꿀 수 있다”

코리안 드리머
기사입력 2019.12.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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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jpg▲ 최용권 선진통일건국연합 공동대표 / 북한종교와신앙의자유국제연대 공동상임대표
 
"정치 이념의 하나인 '자유민주주의'를 동양철학의 개념으로 풀이하면 '홍익인간'입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 같지만 명리학자이기도 한 최용권 선진통일건국연합 공동대표는 "자유민주주의는 홍익인간의 진리적 이치에 가장 부합하는 제도"라고 설명을 덧붙이며 두 개념의 상관 관계를 소개했다.  

"홍익인간은 음양오행과 같이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물(水)과 불(火)의 상생의 조화로 세상을 이롭게 함을 의미합니다. 모든 정치 구조와 사회적 체계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데,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하게 수평으로 흘러가는 '물'의 기운을, '자유'는 어떤 통제 없이 상하로 마구 움직이는 '불'의 기운을 담고 있죠. 즉 자유민주주의는 물과 불의 조화로 탄생된 조화로운 정치체계 입니다. 그런데 '인민'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평등'의 뜻을 담고 있죠. 북한이 정한 인민민주주의는 자유가 없이 평등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친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남북의 정치제도를 철학적으로 접근한 신선한 해석이다. 최용권 대표는 이처럼 동양철학에 해박하나 뜻밖에도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중령으로 예편한 군 출신이기도 하다. 그의 남다른 이력은 부모로도 이어지는데, 부친은  6.25때 북에서 인민군으로 착출된 것을 피해 남하한 후 국군으로 참전한 참전용사이고, 모친 또한 1.4후퇴 때 내려온 실향민이다.  

인터뷰·글 허경은



“진짜 김일성은 누구인가?”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면 북한 관련 연구를 해 온 많은 전문가들도 놀라곤 합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김일성 수령 말고 ‘진짜 김일성 장군’(김경천 장군)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거든요. 평양 태생의 어머니는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생이던 시절, 대동강 인근에서 열린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에 불려나가 맨 앞줄에서 현장을 보셨던 분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진짜 김일성(김경천) 장군을 본 적이 있기에 70대에 수염이 길게 늘어진 노인이란 설명을 듣고 나갔는데 왠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나와 본인이 김일성 장군이라고 하더랍니다. 일제시대 때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이끈 장군이니 외할아버지가 잘못 보셨더라도 그렇게 젊을 수는 없는 거였죠. 그리고 그 가짜 김일성과 한 동네에서 살던 일부 주민들이 그가 김일성 장군이 아닌 김성주(김일성의 본명)라는 걸 알아채고 술렁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때 어머니는 눈치를 채셨죠. 저들이 거짓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3만여 탈북민 중에 김일성 3부자를 직접 만났거나 본 적이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북한 정권이 수립되는 역사의 현장에 최 대표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점은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다. 공산 체제에서 벌어지는 공작과 허구를 깨달은 그의 모친 가족들은 1·4후퇴 때 대전으로 내려와 지금의 그의 부친을 만났다.  

인민군에서 국군이 된 부친

“아버지의 삶도 저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버지 고향이 강원도 3.8선 이북쪽이셨는데 1942년에 그 동네에서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공부를 하셨죠. 지금은 없어진 용산고 근처의 통신학교를 나와 모스부호를 익히셨는데, 그로 인해 졸업 후 고향에 있던 우체국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해방을 맞았고, 아버지가 최초로 일본의 천황항복문서를 모스부호로 받으신 분이 되셨습니다. 당시 일본인이던 우체국장에게 문서를 건네니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라는 얘기를 지금도 해주시죠."

최 대표의 부친은 천황항복문서를 통해 미국의 핵 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하게 된 배경을 명확히 접했으나 공산당원들이 미국을 비난하고 “김일성 장군과 러시아의 스탈린이 우리를 해방시켜줬다”고 하는 거짓 공작을 보며 모순을 깨닫고 6.25전쟁 때 남쪽행을 택했다.

“전쟁이 터져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이 밑으로 계속 밀고 내려갔으나 결국엔 군대가 부족해지자 아버지도 인민군으로 착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피해 도망을 가다 잡혀 고문을 받기도 했구요. 아버지는 공산당을 비판하는 정치활동을 지속하시다 국군이 된 참전용사이십니다. 이런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제가 태어났으니 군인이 되고 통일 운동을 하게 된 건 운명인것도 같습니다.”

“통일 실현 위해 꼭 필요한 비전과 교육”
   
그가 공동대표로 이끌고 있는 선진통일건국연합은 본래 '통일건국민족회'와 '선진통일연합'이 합쳐진 단체이다. 통일건국민족회는 최 대표의 부친과 제1대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안호상 박사가 함께 설립한 단체로. 추후 고 박세일 교수가 이끌고 있던 선진통일연합과 연대해 '건국'이란 이름을 넣어 지금의 '선진통일건국연합'이 되었다. 

"아버지와 늘 함께 하셨던 안호상 박사는 교육법에 최초로 '홍익인간' 용어를 넣으신 분으로, 그만큼 우리의 교육 이념에 홍익인간 사상을 중요시 다루셨던 분입니다. 그 노력으로 인해 우리가 지금도 건국 이념을 잊지 않고 계승해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제 아버지는 저에게 마흔 중반에 이르러 군대를 나오게 되면 명리학을 공부하라고 하셨죠. 아버지 뜻을 이어 명리학을 깊게 연구하다 보니 더더욱 한반도의 운명을 걱정할수밖에 없었죠."

최 대표는 선진통일건국연합에서 매년 남·북(탈북민) 대학생들과 세미나·교육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며 논문집을 발행하고 있다. 통일 후 한반도 재건을 위해 필요한 개발 사업들을 각 분야별로 연구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올바른 비전을 중심으로 한 현실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필요에 의해서다.  

02s.jpg▲ 선진통일건국연합에서 출간하는 보고서·논문집
 
“남북 주민의 ‘의식 통일’ 시급” 

23년간 육군 장교였던 최 대표에게 한반도 정세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2018년 올림픽과 정상회담 등을 거치며 많은 국민들이 남북관계가 잘 되고 있다고 바라본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공산 이념에 따르는 사람들의 의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 기준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회교(이슬람교)도인들에게 영양학만 따져서 돼지고기가 몸에 좋다고 말하면 대화가 됩니까?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자들에게 우리 개념으로 설득을 하면 이해할까요? 우리가 흔히 판단하는 '선'과 '악'의 기준이 공산주의자들의 것과는 다릅니다. 종교, 인종, 국적을 떠나 누구나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선·악의 기준, 가령 살인을 하면 안된다거나 도둑질을 하면 안된다는 것들이 있는데, 공산주의는 어떤 큰 이념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정중에 일어나는 행동들은 모두 합리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국가 건설을 목표하고 있는데 중간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죽여도 되고 여성은 겁탈해도 괜찮다와 같은 논리인거죠. 우리는 북한이 군사합의 등을 약속해놓고 이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해도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목표 달성을 위해 옳은 일’이라고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최 대표의 설명대로라면 더이상의 정상 회담은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이며 통일을 위해 인민(북한 주민)을 움직여 그들 스스로 세상을 바꾸게 도와야 한다고 정리했다.  
 
03s.jpg▲ 11월 19일 TV조선 씨스퀘어빌딩 라온홀에서 열린 '2019 북한종교와 신앙의 자유 주간 문화제'에서 최용권 북한종교와신앙의자유국제연대 공동상임대표(선진통일건국연합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북한은 1%에 의해 99%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1%의 지도자들이 아닌 99%의 북한 주민들이 일어나도록 도와야죠. 통일된 국가의 사례들을 보아도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무력으로 통일을 이뤘지만, 만약 자유진영(월남)이 이겨 통일이 됐더라면 지금처럼 경제발전을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을까요?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 예멘의 통일 과정은 서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남북 국민들 간에 의식이 통일되지 않아 분쟁을 겪다가 200~300만의 난민이 생기는 사태에까지 이르게되었습니다. 독일은 통일 전부터 동독주민 70%가 서독TV를 보았습니다. 서독은 일부러 동독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였죠. 그렇게 서서히 의식이 바뀔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니, 베를린이 무너졌을 때 동독 주민들이 스스로 '서독화'를 선언한 것입니다. 독일 통일을 흡수 통일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동독 주민들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탈북민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한다. 북한 주민에 의한 통일이 필요하다고. “동독 주민들이 장벽 붕괴 후 서독화를 열망한 것은 서독 주민들이 그들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라고 최 대표는 전했다. 언젠가 갑자기 휴전선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얼만큼 그들을 품을 준비가 되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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