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장만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산의 아픔 딛고 남북 공통의 '단군' 뿌리 되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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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산의 아픔 딛고 남북 공통의 '단군' 뿌리 되찾아야"

원 코리아 리더
기사입력 2019.09.0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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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_s.jpg▲ 장만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
 
명절 때만 되면 실향의 아픔과 고향·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6·25전쟁을 계기로 대이동이 불가피했던 피난민부터 근래에는 탈북으로 인해 발생한 신(新)이산가족까지 한반도 위에는 명절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향하는 귀성객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가슴 절절한 실향민들의 눈물과 사연이 뒤섞인다. 

오는 추석 명절을 앞둔 9월 11일에는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가 주최하는 ‘제38회 이산가족의 날’ 행사가 열린다. 1982년부터 시작된 이산가족의날이 해마다 행사를 거듭해 온 것이다. 장만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이산가족의날을 국가기념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국회 청원과 입법과제에 올리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쟁조차 되고 있지 않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 위원장은 "분단 70여 년이 넘어가며 점점 분단과 이산의 아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국가가 '물의 날', '환경의 날'을 지정해 자연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관련 행사를 추진하는 것처럼 '이산가족의 날'도 법으로 제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하루만이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통일 의식도 고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글 허경은


이산가족 대부분이 고령자, 상봉 가능성 점차 비관적

- 일천만 이산가족이란 통계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산가족은 크게 세 부류로 집계된다. 먼저 1948년 정부수립 이후부터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50년까지 약 350만명이 북한에 들어선 공산주의의 학정을 피해 한국 정부를 택해 남하했다. 남과 북에 각각 다른 체제로의 정부가 수립되었기에 이 시기에 발생한 이산가족은 스스로 정치체제를 선택한 경우에 해당한다. 두 번째가 바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일까지 3년 사이에 발생한 전쟁 피난민들이다. 이때 가족·고향을 잃은 이산가족이 150만명에 달한다. 이 두 경우를 합치면 500만명인데, 보통 가족구성원을 최소 2명 이상으로 보기에 남북한 합쳐 1000만명이란 통계를 추산할 수 있는 것이다.”

- 북한이탈주민을 신(新)이산가족이라 일컬으니, 사실상 1천만이 훨씬 넘는 수치로 보면 되는가?  

"그렇다. 탈북민이 벌써 3만3천명에 달하니 이산가족의 수는 남북 합해 천만을 훌쩍 넘긴다. 물론 전쟁 전후에 발생한 이산가족의 다수는 이제 고령자이거나 사망한 경우가 많아서 정확한 통계를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 한국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는 사람은 몇 명에 달하나?  

“지금까지 13만명 정도가 상봉 신청을 했다. 한국의 500만 이산가족 수를 생각하면 이는 매우 적은 수치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상황은 이 13만 신청자들의 북측 가족의 생사가 확인된 경우는 그 절반에 못 미치는 6만여 명 뿐이라는 것이다. 상봉행사 1회당 약 100명 정도만 만날 수 있으니 6만명이 모두 만나려면 600년이 걸린다는 셈이다. 이들 대부분이 80~90대인걸 고려하면 앞으로 이들의 상봉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005s.jpg▲ 실향민의 노래 (출처=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산가족' 간행물)

가족 상봉 후 더 상처받은 가족들

- 이산가족 상봉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상봉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은 두 번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즉, 일회성 행사로 그친다는 것인데 이것만 보아도 무의미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산가족위원회를 맡고 있지만 나는 이런 일회성 행사에 항상 문제 제기를 해 왔다. UN이 정한 이산가족 상봉 관련 사업 방침이 있다. 첫째, 명확한 생사 확인이 먼저 되어야 할 것. 둘째, 서신(편지)·전화 등을 통한 확인 작업이 진행될 것. 셋째, 상봉의 지속성과 자유의사에 따른 거주 결정이 존중될 것이다. UN이 단계별 방침을 제시한 이유는 이런 지속적 과정이 결국 통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상봉행사는 이 모든 세 단계의 불이행에 있다. 기본적으로 일회성 만남인데다 평소 서신교류도 불가하며, 가장 첫 번째 단계인 생사 확인조차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생사 확인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 가족들의 안위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남쪽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에 스스로도 잃어버린 가족을 행방불명도 아닌 사망자로 신고하는 편이다. 한국의 가족들도 혹여 북의 가족들이 고초를 겪지않을까 걱정해 생사확인을 꺼려한다. 결국 체제의 문제다. 지금까지 30~40년간 해 온 이산가족 상봉은 강하게 질타해 ‘쇼’에 불과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상봉에 나섰던 가족들을 가까이에서 보았을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다면?

“사실 이산가족 상봉 후에 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계신 김현숙(94) 고문의 사연도 다르지 않다. 김 고문은 지난 18차(2015년) 상봉 때 북한에 남겨졌던 딸을 만났다. 당시 김 고문은 90세였고 딸은 67세였다. 그런데 막상 대면하고 보니 딸과 엄마가 뒤바뀐것 같았다. 너무 늙어버린 딸의 모습에 김 고문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마지막 헤어지던 날 서럽고 애절한 마음이 더 깊어졌던 김 고문은 서울로 돌아온 직후 충격이 심해 실어증에 걸렸고 2달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007_s.jpg▲ 김현숙(당시 90세, 왼쪽)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고문이 2015년에 열린 18차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북한의 딸(김춘복, 당시 67세)과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김현숙씨는 외관상 자신보다 더 연로해진 딸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상봉행사 직후에 실어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사진 제공=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금전적 목적을 취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물론 전체가 다 그렇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북측의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인 데 있다고 본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겠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살아가던 한국계 아버지가 북의 딸을 만난 적이 있다. 이 분은 미국 국적이니 직접 방북도 하여 딸을 만났다. 전쟁 때 딸을 두고온 죄책감이 커서 자주 북한을 방문, 딸에게 돈·귀금속은 물론 입고 있던 외투도 벗어주고 오며 각별한 만남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한번은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돈이 필요하니 10만원만 보내달라고 했다더라. 10만원이 북한돈을 말하는 것이냐 미국돈(달러/ 약 1억2천만원)을 말하는 것이냐 되물으니 딸이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주변 누군가에게 똑같이 묻더란다. 손으로 막았어도 소리가 새어나와 들렸는데, 수화기 너머 누군가가 미국돈으로 받으라고 시키니 딸이 그대로 전하며 ‘미국에 있으니 미국돈으로 주시라요’ 했다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여러 차례 딸과 만남을 이어오며 점차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딸이 자신을 돈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확신과 실망감이 들어 딸과의 모든 인연을 끊게 됐다. 이건 단 한 사람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에는 이와 같은 목적의 불분명함과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 상봉 행사,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1:1로 일회성에 그치는 지금과 같은 행사는 더이상 무의미하고 어떤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 더구나 초고령화된 이들의 상봉 성사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지속 제안하고 있는 개선안은 고향방문 프로젝트다. 실향민들에게 물어보면 ‘가족을 만나는 건 힘들더라도 고향땅 한번 밟아보고 죽는게 소원’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살던 곳의 공기, 냄새, 정취를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대면상봉을 그만 멈추고 북한과 협의해 방문지역을 다양하게 선정한 후 실향민들이 단체로 고향방문을 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는 제안을 넣고 있다. 성사되기까지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주장과 설득 과정이 계속되어야 한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김정은 정권은 조금 다를 것이다. 지금 북한에는 완전한 개방은 아니더라도 제안적 수용은 고려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본다.”    

통일 시대 이끌 탈북민

- 새로운 이산가족,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필요할 것 같다. 

“탈북 이산가족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통일 이후 고향에 돌아간 이들의 증언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통일 과정부터 이후까지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하며, 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 통일 시대에 앞서 남북갈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갈등해결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남과 북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 하나를 찾아 그것을 매개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나는 그 매개를 ‘단군’에 두고 있다. 북한에는 단군 묘가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고 복원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수령 체제와 별개로 한반도의 뿌리가 된 단군을 조상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것이 남과 북을 이어주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이질화가 극대화돼있지 않은가. 남북이 단군과 관련한 공동 연구와 교류 프로젝트를 펼칠 수 있다면 아주 효과적인 관계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004s.jpg▲ 지난 8월 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통일실천축제한마당'에서 장만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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