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오청성 JSA귀순병] 통일 위해 찾아야 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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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청성 JSA귀순병] 통일 위해 찾아야 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코리안 드리머
기사입력 2019.07.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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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jpg▲ 오청성 JSA 귀순 병사
 
한국에 새로운 터전을 잡은 북한이탈주민이 3만명을 넘는다. 이들의 탈북 루트는 북중 접경 지역을 지나 제3국을 통한 경우, 동해나 서해로 목선을 타고 바다 건너 온 경우, DMZ 철책선을 넘고 지뢰 밭을 헤쳐 온 경우 등 그들이 살았던 지역과 몸 담았던 직업과 개인의 사연에 따라 모두 제각각이다. 아마 그 중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경우가 오청성 씨와 같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사례일 것이다. 

지난 2017년 11월 북측 판문점에서 북한군 차량 한 대가 군사분계선을 향해 질주한 후 운전석에서 뛰어 내린 병사가 총격을 받으며 한국 땅을 밟았다. 이 사건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외신을 타고 비중 있게 다뤄졌다. JSA를 통해 귀순한 사례는 지난 1998년,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라고는 하나 이처럼 생중계 되듯 탈북 과정이 모두 공개되고, 이를 저지 하기 위한 총격전이 발생한 것은 최초의 일로 보고된다. 

000.jpg▲ 2017년 11월 오청성 북한 병사가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탈북할 당시의 모습이 CCTV에 담겨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총상 환자를 포함해 국내에서 중증외상 치료 전문가로 유명한 이국종 교수에 의해 수술을 받은 귀순 병사 오청성은 2018년 2월에 이르러 퇴원, 같은 해 6월 하나원을 수료했다. 하나원 수료를 기점으로 보면 그가 한국 사회를 몸으로 체험한 기간은 만 1년에 불과하다. 

여느 탈북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토록 ‘극적인’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기에 그의 존재는 하나의 큰 변화이자 희망의 아이콘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었다.”고 털어놨다. 혈혈단신 탈북해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었고 수많은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부담으로 다가왔으며 숨은 듯 조용히 있자니 자신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이 될텐데… 북에 있는 가족들을 다시 만나려면 제가 잘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방송 출연도 시작하며 공개적인 활동을 결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터뷰·글 허경은 / 사진 이용현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

오 씨는 최근 TV조선 <모란봉클럽>, <강적들> 등에 출연하며 탈북 계기를 묻는 패널들의 질문에 치밀한 계획이 아닌 순간적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판문점 인접 지역에서 예기치 못한 충돌이 발생했는데 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되자 남한 행을 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한국 가요를 듣고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고 하니, 마음에 깊게 일던 동요가 그의 순간적 선택을 좌우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01s.jpg▲ 오청성씨가 방송 출연을 통해 탈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TV조선 '모란봉클럽' 방송화면 캡쳐)
 
“어릴 때부터 집이 개성에 있었기 때문에 개성공단 상황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자랐습니다. 품질 좋은 한국 제품들, 근로자들의 자유로운 모습들… 그것만 봐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것들과 비교하게 되었죠. 군대에 간 후 JSA에 근무하게 되면서 가끔 사격 훈련을 하러 올라가면 (발전된)한국 땅이 내려다보였고, 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을 보아도 패션이나 말투, 행동거지에서 대담하고 자유로운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곳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죠.”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배급체계는 무너지고 장마당 성행, 돈주(북한의 자본가)들의 등장 등으로 이미 북한 내부에서는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오 씨의 증언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북에서도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고 절실합니다. 아버지는 군관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권력이나 계급 면에서 부족하진 않았지만 배급에만 의존하면서 돈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사니 먹고는 살아도 넉넉한 건 아니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갈 때쯤, 평양의 경호국으로 가면 돈을 좀 모을 수 있다고 들어 그쪽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번 돈으로 휴대폰이나 오토바이를 사고, 가정형편에 보태기도 했죠. 그러다가 경호국에서 총정치국을 거쳐 JSA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배고픔? 체제 불만?... 자본주의 동경!

최근엔 대북 확성기방송이 중단됐지만 오 씨가 DMZ 접경 근무 당시엔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그 심리전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는지 묻자 “확성기 방송에 동요를 느낀 적은 없다”고 명확히 말했다.

“글쎄요. 북한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마음이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영향을 받았다는 분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저는 이미 그 전부터 한국 노래를 많이 들어 새롭지 않았고, 대북 방송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다 믿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와서야 3만여 탈북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는 그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탈북의 결정적 계기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고 말을 이엇다.

“정말 배고프고 힘들어서 나오는 사람, 어떤 큰 변을 겪어 체제에 한을 품고 나오는 사람, 자본주의의 맛을 느끼고 돈의 가치를 깨달아 나오는 사람… 저는 세 번째 경우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님을 비롯해 최근 고위층 탈북이 늘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는 대부분 비슷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체제 모순을 일찍이 깨달아도 가족의 안위를 생각해야 하고 권력도 어느 정도 쥐고 있다면 바로 탈북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나름의 (북한식)시장경제를 이미 맛본 후라면 배급제로 되돌아가기 어렵고 힘들게 벌고도 마음껏 누리며 살 지 못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죠. 고모부(장성택)도 처형하는 판에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항상 위험이 따르는 곳인데요.” 

03.jpg▲ 지난 5월 20일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주최의 '탈북지도자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오청성 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실상 오 씨는 북에 있을 때 더 부유하게 살았다. 한국에 온 뒤 정착지원금을 받았지만 초기에 기초 생활을 유지하는 정도에만 그쳐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공사 현장에 나가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 더 만족하는 이유는, 노력한 만큼 벌고 정당하게 쓰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도 꿈꿔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씨가 덧붙인 말에서 한국행을 택한 이유와 미래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요.”   

“통일 한반도 위해 긍정적 기여 하고파”

한국 땅을 밟던 날부터의 자신의 모든 상황 변화에 쏟아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오 씨에게 불편과 부담이 됐다.

“초기에 일본 산케이신문, 미국 NBC 등 해외 언론과도 인터뷰를 했었는데, 때론 왜곡 보도가 나가서 정정 요청을 한 적도 있습니다. 아직 북에 가족들도 있고 여러모로 조심스럽고 민감한 부분이 많아 그 후론 한동안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 왔지만 주변 분들의 조언을 듣고 오래 고민한 끝에 제 목소리를 올바로 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최근 TV출연을 하게 되면서 주변에서 더욱 격려해 주시고, 강연 요청도 많이 받아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과 만나 대화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반도 문제를 많이 연구한 전문가들만큼 지식이나 식견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또 남과 북의 사회를 겪어본 입장에서 제 또래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많은 기회를 통해 전해주고 싶습니다.”   

강연 때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를 공유해달라고 청하자 ‘통일 전’ 보다는 ‘통일 후’와 관련한 메시지를 전했다.

“강연을 하게 되면 꼭 이 말을 하곤 합니다. ‘통일이 된다면 그 시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미리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통일이 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보지만 ‘반드시’ 될 거라고는 확신합니다. 지금부터라도 통일 후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미리 고민하고 준비한다면, 분명 통일도 앞당기고 그 사회를 위해 기여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03.jpg▲ 지난 6월 27일 대구에서 열린 ‘2019 통일공감 토크콘서트’에서 오청성씨가 강연을 하고 있다.
 
역으로 오 씨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통일 후 오청성 씨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꼽는다면? 

“가장 먼저 가족을 만나 내 가정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건 재 개인적인 소망이겠죠. 좀 더 넓게 본다면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제가 이 곳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군복무만 너무 오래하다 넘어와서 학업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대학 진학을 목표로 준비를 해가고 싶습니다.”  

오 씨는 통일된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준비할 게 많다고 했다. 70여년의 분단 역사도 한반도 전체의 역사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앞으로 뻗어나갈 더 긴 역사를 긍정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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